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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특강하는 이회창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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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센터 초청강연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그의 발언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강연에 직접 참석한 입장에서 봤을 때, 맥락적으로 충실한 해석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기본적인 리더십 중에 '법치와 신뢰' 부분에서 '정의'를 논하는 맥락 속에 현직 대통령을 언급했다. 하지만 전체 강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온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 전 총재는 "대통령은 국민 앞에 정의를 추구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며 "대통령이 바른길을 가지 못하면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 (힘으로) 내리누르는 것은 합법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국가원로로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회창 전 총재의 이날 강연은 사실 3년간 '묵언수행'을 깨고 공적인 자리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정치행보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주최 측의 초청 의도도 입법, 사법, 행정 3부 주요 직위를 두루 거치며 국정운영의 핵심위치에 참여했던 인물을 통해 그 경륜을 듣는데 있었다.
강연장에서 나온 선거와 정치 이야기는 이 전 총재의 자조와 회한 속에서 나온 두어 가지 일화에 불과했다. 그중 한 가지는 과거 김대중 정권시절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의원 빼가기'였다. 그는 "그때는 분통이 터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옵니다"며 담담히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 3번 출마해 낙선한 것도 농담의 소재로 삼을 만큼 그는 다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그에게서 웃음와 여유가 보인 것은, 그 내려놓음이 크게 작용한 듯 보였다.
이회창 특강이 정치 행보? 그렇지 않다오히려 그는 강연주제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가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6살 현직 검사였던 아버지가 구속돼 교도소에 있을 때 면회를 가서 받은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는 "대나무로 엮은 투구를 쓰고 나온 아버지의 모습에 그만 눈물을 흘렸다"며 "그 이후로 '정의'가 한 번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법관신절 소신있는 판결로 대쪽같다는 평판을 들었다. 물론 정치인 시절의 그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 자리에서는 보수주의자로 생각했던 그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경고였다. 그는 공정과 배려로서 '정의'에 대해서 언급하며 "공동체 구성원이 존중과 배려 속에서 공평한 능력발휘와 성취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자는 있는 것조차 빼앗기리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마태의 원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격차가 심해지며 사회연대성이 무너져 공동체가 위협 받는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과거 철인들의 사상에서 찾았다. 그는 여러 동서양 철인들의 사상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말했다"며 "국가 존립에 필요한 군사와 양식, 신의 가운데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면, 군사와 양식은 버릴 수 있어도 신의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플라톤은 철인 통치를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정의를 추구함'이라고 언급했다"며 "정의를 실현·체현한 나라는 모두 선진국이 됐다, 우리도 (선진국) 도약을 위해서는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의로운 국가에 대비해 정의를 잃은 사회를 설명했다.
"정의를 잃은 사회는 암울하고 희망이 없다. 공정한 기준이 없어 연고주의와 편의 사회가 된다. 부정부패도 만연한다. 요즘 방산비리가 큰 문제다. 비겁사회를 만든다. 눈치보고 권력자와 대세에 아부하는 것이다."이어서 사례로 언급된 부분이 박근혜 대통령에 배신자 발언으로 왕따를 당한 '유승민 의원'사건을 대세에 몰려 부화뇌동한 것으로 비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두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정의라고 독단하는 것은 아닌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직적인 사회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는 발언이 있었다. 날선 비판이라기 보다는 차분함을 잃지 않는 직언에 가까웠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가 제시한 대안은 이렇다. 먼저, 대통령은 정의 추구를 확고히 한다. 이게 단임제 대통령의 장점이다. 둘째, 불공정한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세월호 사태에 국민들이 정부의 말을 믿지 못했다. 과거부터 권력이 부정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셋째, 아부사회를 넘어 패기의 사회가 돼야 한다. 창조능력과 성취 욕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아부가 만연한 공직사회에서 대세에 순응하기보다 직언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밖에 "갑작스러운 통일대박론은 국민에 환상만 심어주는 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시절 햇볕정책 이면에서 서해교전 등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던 남북관계를 사례로 들면서 현실주의적인 신중론을 펴는 모습은 영락없이 보수주의자 였다.
동북아 세력균형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더라도 국익에 기반에 당당하게 자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항일 전승절 열병식 참석은 잘한 일'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한계점도 있는 강연, 나름 유익했던 시간강연 말미에 그는 "총리 시절 소신있는 행보를 펼치다가 주변에서 성격이 않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총리는 대통령에 폭넓게 정책 질의를 하고 마찰이 있더라도 직언을 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당 태종은, 당돌할 정도로 직언을 한 신하에게 심기가 상해 투옥시켰다가도 다시 복위시켰다고 한다. 그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 우리 정치현실이 그만도 못하다고 지적했다.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은 그의 국정운영 경험과 정의 실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누구도 정치인으로서의 이회창과 그의 정치행보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물론 한계점도 있었다. 그가 "기존의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강대국의 꿈을 이뤄야 한다"며 내세운 해양강국과 우주강국 실현, 이를 위한 해양 국방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 부분은 구체성과 현실성이 부족했다. 특히 우주기술은 미국이나 소련에서도 막대한 비용으로 투자지속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인구감소와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에게는 과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틀었다.
어찌 보면 강연장에서 그는 교수보다 더 편안한 태도로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았나 싶었다. 이처럼 과거의 회한을 소탈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초연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그라면 이제 나라를 맡겨도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만큼 그는 다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사실 그런 그에게 묵언수행과 철학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국정을 맡는 일보다 더 행복한 일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질문은 할 수 없었다.